대기업들의 eBiz 전략-어디로 가는가?

지난 3월 27일,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삼성 직원들은 ‘구조본’이라 부른다)는 그룹 내 e비즈니스사업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e삼성 지분 75%를 제일기획이 흡수하고,e삼성 인터내셔널의 60% 지분을 삼성 SDS와 SDI,전기가 인수하며,나머지 가치네트의 지분 57.2%와 시큐아이 지분 45.5%는 금융계열사가 흡수한다는 것이 이번 구조본의 결정이다.

그리고 나머지(오픈타이드,인스밸리 등) 닷컴들도 조만간 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Personal Portal’이라는-매우 의심스러운 비즈니스 전략을 내세웠던 이누카는 이제 청산절차만을 기다리고 있다.

공채 32기이자 회사가 제공하는 학술연수 비용(?)을 받고 하버드에서 수학한 이재용 씨의 e삼성은 이제 계열사들에게 무거운 짐만 안겨준 채 계열사들의 주가를 갉아먹는 해충으로 전락해 버렸다.

제일기획은 e삼성 지분의 75%인 240만주를 208억원에 샀다.208억원은 제일기획 2000년 당기순이익 417억원의 절반에 해당한다.당연히 주가는 떨어졌다.지난 27일 가격제한 폭 가까이 떨어진 데 이어 28일에도 4.65%나 하락했고,삼성SDI도 3일 연속 하락, 29일 5만8200원으로 내려앉았다.

참고로 제일기획은 96년 3월 사모전환사채 18억원 어치를 주당 1만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재용 씨에게 발행하였고,98년 3월 3일에 상장되어 연속 13일간 상한가를 기록하였는데,이재용 씨는 상장직전에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주식 29만9천3백75주(지분율 20.79%)를 보유하는 최대주주가 되었던 회사다.

한편,이번 e삼성의 처리에 대해 외국 언론들은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Financial Times는 3월 28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이번 사태를 논평했다.

What’s a dotcom entrepreneur to do with his collection of suffering businesses? Easy: sell them to daddy’s conglomerate. That is the answer Lee Jae-Yong, heir to the throne of South Korea’s Samsung group, has come up with. Is this what they teach at Harvard Business School these days?

Samsung companies are paying many billions of won for startups of uncertain value without due and transparent process. The only explanation is that Lee Jae-Yong wants to concentrate on his new job as vice-president of Samsung Electronics and successor-in-waiting to his father, Lee Kun-Hee, group chairman.

e삼성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정의선(정몽구 회장의 장남) 상무도 인터넷 계열사인 e-HD.com의 주식 32만주를 현대자동차에 19억 2천만원에 넘겼으며 오토에버닷컴의 지분 20.1%도 다른 계열사에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e대기업들이 인터넷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작업을 행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 볼 수 있겠으나 필자는 크게 큰 그림을 그려내는 전략가의 부재와 고객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그룹 계열사들의 물리적 기능만을 고려한 네트워크 구성,그리고 벤처정신의 부재 등이 이런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본다.물론 가장 큰 원인은 그룹총수와 그 후계자들에게 있다.

e삼성의 경우 원래 그림은 크게 3가지로 금융과 개인맞춤,컨설팅 사업 부문을 공략했으나 이누카를 중심으로 한 개인맞춤 정보 서비스는 일단 접는 것으로 하고,금융의 가치네트도 그 향방이 묘연하다.

컨설팅 부문인 오픈타이드도 초기 큰 그림이었던 해외진출은 아직 별 성과가 없고 국내 소규모 영세 에이전시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그렸던 그림이 맞다면 SDS와 오픈타이드는 한 회사처럼 움직였어야 한다.SDS의 고급 개발력과 SI 경험,그리고 오픈타이드의 컨설팅 능력과 디자인력을 합쳐서 일종의 XSP로 그림을 맞추었어야 한다는 얘기다.그래서 해외로 치고 나갔어야 한다.

그런데 그룹 계열사들과의 불화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오픈타이드와 SDS 관계였고,이것 말고도 삼성화재가 진행하는 금융포탈이 따로 있고,가치네트라는 별도의 금융포탈이 따로 있어서 서로 불편해 했다는 것은 계열사와 e삼성간의 궁합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이다.

궁합이 좋지 못했다는 것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할만한 뛰어난 전략가가 없었다는 말이다.게다가 대부분 삼성 직원 중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e삼성에서 일할 수 있었고,그런 사람들을 토대로 팀을 구성하다 보니 실전경험 또한 매우 부족했던 것이다.

벤처정신이 부족한 것도 e대기업의 큰 단점일 것이다.사실,삼성이나 현대에 있으면 월급 못 받을까 봐 걱정하진 않는다.좀 과한 표현이라고 말씀하시는 독자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내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통과한 분들이라면 필자가 말하는 벤처정신을 느끼실 거라 믿는다.

재미있다.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재벌 2,3세들이 모여‘디지털 4인방’이니 뭐니 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 전문가들로 자처하더니만 이제는 슬며시 발들을 빼고 있다.물론 시장환경 때문에,그리고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은 정리되어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 혁명이 일어날 때면 Promising Opportunity, Land Grab, Pile On, Shake Out, Harvest의 단계를 거치면서 굵직 굵직한 Market Leader들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산업혁명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인터넷 비즈니스는 지금 Shake Out의 단계에 서있다.그리고 많은 닷컴들이 시장의 압력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e대기업들의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결국,e대기업들의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에 열정 어린 젊은이들이 상처 받고,아직 영세한 인터넷 기업들이 많은 리소스를 낭비하는 결과를 맛보게 된 것이다.

궁금하다.수확의 시기가 도래 했을 때,이들은 과연 무슨 명분을 가지고 다시 나타날 것인가? 하기야 그 때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200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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