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는 아키하바라 역에 내려 “JR전기가입구(JR電気街口)란 푯말을 따라 나와 중앙로(中央通り)에 이르면 시선이 끝나는 곳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전자제품 전문점들의 간판들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거기에 한 블록만 뒤로 들어가면 여기 저기서 방금 MMORPG에서 튀어 나온 듯한 살아있는 여신들이 “고슈진사마, 오모도리나사이(“여보, 돌아오셨어요” 정도의 의미로 아내가 남편이 귀가할 때 하는 인사)”라며 맞아주었다.
그 당시 아키하바라는 모노즈쿠리의 나라 일본의 앞선 전자 기술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아우라를 품어내는 곳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최근 일본에 출장을 가는 분들은 굳이 시간을 내서 아키하바라를 찾아가지 않는다.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는 신주쿠(新宿)나 시나가와(品川) 혹은 유락초(有楽町)와 긴자(銀座) 부근에 빅카메라, 요도바시 카메라, 야마다전기 같은 양판점(量販店)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경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카카쿠닷컴(kakaku.com)에서 가격을 비교하고서 온라인에서 구매하거나 포인트 적립을 위해 양판점을 찾기 때문에 굳이 아키하바라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아키하바라는 서서히 그 수명을 다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아키하바라에서 일본 제조업의 미래를 발견했다. “DMM.make 아키바”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이커스 무브먼트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DMM.make Akiba(https://akiba.dmm-make.com/, 이후 간략히 “메이크 아키바”)는 간단히 말하자면 ‘공용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총액 5억엔의 제조 기계와 제조한 제품의 성능 검사에 필요한 최신 기자재를 구비해서 대략 100대 분량의 소량 생산까지도 해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을 운영회사는 주식회사 DMM닷컴으로 일본 성인비디오 업계를 천하통일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성인컨텐츠 전문회사가 일본 제조업의 미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것임에는 틀림없이지만 아키하바라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문화가 ‘모에(萌え)’이고 이 모에코드가 성적인 코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어색하다고도 할 수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느끼겠지만, 이 곳 “메이크 아키바”가 기획되고 운영되어온 과정을 보면 “메이크 아키바”는 세계적인 메이커스 무브먼트 흐름의 본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DMM.make Akiba는 2014년 11월에 문을 열었지만, 그 시작은 2012년 9월 일본 인터넷 호스팅 업계의 대표주자 사쿠라인터넷의 창업자인 오가사와라 오사무(小笠原治)가 DMM사의 카메야마 케이시(亀山敬司)회장에게 제시한 3D프린터를 축으로한 output사업계획서였다고 한다. 이 시기라면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가 출간되기 직전이었고 아직 메이저 언론들에 의해 메이커스 무브먼트가 크게 조명을 받고 있던 때가 아니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카메야마 회장과 오가사와라 대표가 의기 투합하여 무모해보이는 일을 시작한 것이 2013년 7월에 3D모델의 데이터를 인터넷에 업로드 하면 DMM이 3D프린트 결과물을 고성능 3D프린터로 출력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DMM 3D사업으로 구체화되고 이것이 다시 2013년 10월에 크리에이터스 마켓(3D데이터를 출력해서 만든 조형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시장)으로 확대되었다가 지금의 “메이크 아키바”가 된 것이다.
일본 내에는 “메이크 아키바” 이외에도 메이커스 무브먼트의 영향을 받은 메이크스페이스들이 다수 존재한다.
- 페브카페 도쿄(FabCafe Tokyo, http://fabcafe.com/tokyo/) – FabCafe Tokyo는 6개국 6개 도시에 위치한 글로벌 네트워크 FabCafe의 일본 점포라고 할 수 있다. 동경 시부야 도우겐사카(道玄坂)에 위치해있다.
- 페브랩 시부야(FabLab Shibuya,http://www.fablabshibuya.org/) – 2012년 10월31일 오픈, 동경 시부야 우다가와쵸(宇田川町)에 위치한 메이크스페이스로 레이저가공기, NC전달기, 3D프린터 굴삭가공기, 컷팅 머신, 디지털 미싱 등을 갖춤.
- Techshop 富士通(http://www.techshop.jp/) – 미국의 TechShop과 후지츠가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음으로 시작된 메이크스페이스로서 도쿄미나토구 아크모리빌딩에 2016년 초에 오픈.
이상의 다른 메이크스페이스와 “메이크 아키바” 위에 소개한 페브카페 도쿄나 페브카페 시부야와 차별화된 점을 꼽으라면 규모와 상업성이 아닐까 싶다.
“메이크 아키바”의 월 사용료는 1만5천엔에서 2만엔 정도이지만 입주사들이나 이용자들의 기재 사용료를 포함하면 회원 1명당 월 평균 3만5천엔에서 4만엔정도의 매출이 발생 중이다.
오가사와라 상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사업 시작 전의 예상에 약 2배 정도의 매출이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일본 안에 이런 장소를 사용하고 싶다는 잠재적인 니즈가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크 아키바”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아키하바라를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메카로 라고 말한 이와사 타쿠마(岩佐琢磨)씨가 창업한 세레보(Cerevo)같은 가전벤처와 츠나구 디자인(ZNUG Design)의 네즈코우타(根津孝太)같은 개인 디자이너를 포함해, 일본 대기업제조메이커의 출장팀들이 있다고 한다.
기업 외에 이곳을 찾는 개인들은 일본의 모노츠쿠리와 디자인의 전면 무대에 서보지 못했던 제조업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Cerevo와 같은 제조업 스타트업에 자극을 받은 탈 샐러리맨 지향을 가지고 개인적인 활동으로서 토요일과 일요일 혹은 수요일 밤을 이용해서 모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런 메이커스 무브먼트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가 있는데 그 첫번째가 전기, 전자, 정밀 기계 등의 제조업 분야의 많은 전문 인력들의 경험과 지식이 2000년대 후반에 급격하게 강화된 인터넷과 모바일 인프라 위에서 육성된 IT인력들과 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분야의 사업가인 오가사와라 대표이 “메이크 아키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맞고 그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수 많은 제조업 인력들이 자신들의 지식으로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만들어 성공시키고 있는 것이 이런 주장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두번째는 꼭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렴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3D프린터들이 저렴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커스 무브먼트에 필요한 기계가 3D프린터만은 아니지만 소량 다품종 생산을 엄청나게 저렴하게 구현할 수있는 돌파구를 만들어주는 것은 단연코 3D프린터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3D프린터가 출현한 것이 1980년대 후반이고, 그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거의 완성된 것이 1990년대 후반이지만 3D프린터의 기본특허가 2009년에 풀리면서 수억원대를 호가하던 가격이 수십만엔에서 수백만엔대로 내려가게 되면서 3D프린터가 메이커스 무브먼트를 가속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바로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새로운 자금 확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래의 리스트는 일본내의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이다.
- 캠프파이어(https://camp-fire.jp/)
- 모션 갤러리(https://motion-gallery.net)
- 레디포(https://readyfor.jp)
- 카운트다운(https://www.countdown-x.com/ja/)
- 마쿠아케(https://www.makuake.com)
- 에이포트(https://a-port.asahi.com)
이와 관련한 “메이크 아키바”의 총괄 프로듀서 오가사와라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팔린다’라고하는 것이 ‘만들수 있게되었다’보다 앞서서 존재하게 되었다. 디지털 제조(컴퓨터와 접속된 기계를 사용해서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재를 가공/성형하는 기술)가 이렇게해서 활성화 되었다는 것에 대해 “3D프린터 등의 등장에 의해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제품이 팔린다라든지 새로운 가치관이 전달될 수 있다라는 등의 지금까지의 스타트업 기업들이었다면 만들수 있겠다를 생각한 후에 생각해야하는 것들이 먼저 실감 할 수 있게 된게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팔린다라는 것을 좀더 설명하면 역시 인터넷 이후에 니치 커뮤니티들을 발견하기 쉬워졌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노우 보드 중에서 활강중에 체중을 어떻게 분배하면 좋은 지를 알고 싶다.라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다하면 체중 센서로 체중의 걸리는 방식을 계측할 수 있는 바인딩을 만들어보자 라는 발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만들수 있다라는 것은 우선 말들고 싶은 욕구로부터 시작해서 기술적으로 만들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그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가까운 곳에서 발견하기 쉽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클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서 돈만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만들어서 팔아보기 전에는 알수 없었던 니치한 니즈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 존재하는가를 만들기도전에 미리 확인해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키하바라를 거점으로 시작한 “DMM.make 아키바”에서 필자는 일본 제조업의 새로운 미래를 가능성을 느꼈다. “인터넷과 가전을 연결해간다. 사물(모노,モノ)을 재정의 한다”와 같은 주장을 하며 일본 가전업계에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는 Cerevo와 같은 가전 벤처 기업이 “메이크 아키바”를 중심으로 한 아키하바라 발 메이커스 무브먼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