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잠시 다녀왔습니다.거기서 보고 생각한 것을 한번 나눠보고 싶어서 쓴 글이니 혹 일본 한번 다녀와서 유세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넷 업계에 계신 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셨겠지만 필자 역시 업무를 마치고서 바로 아키하바라와 도쿄 중심가의 서점들을 뒤지고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발견할 수 없는 앞선 트랜드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아키하바라의 제품을 보며 느낀 점
역시 앞선 하드웨어들이 필자의 눈과 발걸음을 잡아 끌기는 했지만 지난 가을에 왔을 때와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그래도 뽑아보라고 하면 첫번째로 노트북이나 PDA에 연결해서 Data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PHS방식의 P-in Comp@ct라고 하는 DoCoMo의 신제품을 말씀 드리고 싶다. 이 제품은 지금 우리들이 노트북에 사용하는 PCMCIA카드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Sharp사의 PDA등의 확장팩 슬롯에 연결되어 바로 데이터통신이 가능하게 해준다.
속도는 64K이니까 상당히 좋은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가격 역시 2만3천엔 정도로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노트북에 연결할 때는 PCMCIA카드슬롯으로 연결해주는 converter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
지난해 가을에도 비슷한 제품을 보았으나 그 때는 노트북에서만 사용하는 PCMCIA카드 전용 제품이었는데 이번에는 PDA까지 대응하도록 해서 모바일 컴퓨팅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반가운 호사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국내에는 언제쯤 이런 제품을 만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니 은근히 화가 났다. 여기저기 듣는 바로는 국내 업체들이 이런 제품을 사실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나치게 빨리 이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화낼 만한 일 아닐까? 아마도 DoCoMo라도 국내에 들어와야 제대로 된 앞선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필자의 눈을 끌었던 제품은 바로 Sony의 첫 PDA작품인 SONY PEG-S500C였다. 판매가격은 5만5000천엔 선으로 똑같이 Full Color UI를 보여주는 Palm VIc의 4만2천8백엔 보다는 20%가량 비쌌다.
OS가 Palm3.5인 점을 생각하면 기능상의 특이한 점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미련한 디자인이나 메모리 스틱을 수용한 타 SONY제품과의 호환성 그리고 SONY매니아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고려하면 Sharp와 Palm이 이끌어오던 일본 PDA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국내에도 올 가을이면 EasyM.com과 CyberBank의 국산 PDA들이 모바일 기능을 탑재하고 Palm과의 전쟁을 시작할 텐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주 궁금하다. 삼성과 LG같은 대형 전자제품업체와의 제휴 없이 이들 벤처들이 과연 시장에 계속 남을 수 있을 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인터넷 관련 서적출간의 변화를 통해 느낀 점
나는 먼저 한국에서 현재 읽을 수 있는 미국책 번역서들을 일본판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술서적의 경우 미국에서 신간이 나오면 좀 지나서 일본에서 번역이 되고,그것이 한국에 재차 번역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미국의 요즘 신간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번역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내게는 참 신기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런 번역서가 차지하고 있어야 할 책장이 i-mode의 성공사례와 i-mode의 컨텐츠 제공 준비자들을 위한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유심히 책 제목들과 목차를 살펴보니 미국의 인터넷을 따라가기만 하던 일본이 이제는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표준이 될 것이고 이를 위해 일본이 준비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변화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회사에 다니거나 통신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i-mode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i-mode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했던 방식은 이를 남보다 좀더 빨리 밴치마킹(좋게 말해서 밴치마킹이지 잘 베껴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해서 확실한 대박을 쳐보자 하는 생각이 상당수가 아니었나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일본은 이미 70년대 패러다임 쉬프트를 통한 새로운 마켓접근으로 일본의 Just in time시스템을 이미 세계표준 공정으로 만들었고 일본의 워크맨,그리고 도요다의 승용차를 세계적 제품으로 만들면서 미국을 추월했던 경험을 한 나라이다.
일본은 지금 i-mode의 성공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지금,그 때와 비슷한 기회가 일본에게 온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근래 우리나라의 n-TOP과 Personnet등의 서비스의 진행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지나치게 일본의 케이스에 의존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지금 자신들이 i-mode를 통해 쌓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2의 도요다와 소니로 NTT 도코모를 키우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의 모바일을 우리가 철저히 따라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일본의 모바일 인터넷산업 세계화 전략의 테스트베드가 되는 것을 자처하는 꼴이 된다.우리는 일본 못지않은 무선통신사용자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이런 좋은 환경을 가진 우리나라의 무선통신사업자가 지금 돈이 된다고 일본의 컨텐츠와 시스템 베끼기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이번 정보통신혁명에서도 선진국이 될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겨우 몇 서점 돌아다니며 본 것을 가지고 너무 비약한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필자에게는 정말 심각하게 현 상황이 느껴졌다.
아무튼 앞으로 진지하게 우리나라의 인터넷이 강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세계표준으로 만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Danny의 일본 유람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