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야기지만, 반 고흐전을 우연히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여러 작품들 중에서 그의 해바라기는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실제로 보니, 살아숨쉬는 듯 야생적인 박력감마저 느껴졌구요.
신기하기도 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치 마요네즈 같은 걸로 더덕더덕 맨손으로 문지른 듯, 힘찬 느낌이더라고요. 제가 느낀 대로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박력감이라는 느낌을 이해하시긴 어렵겠지만…
음…어릴 적에 동물원에 갔었죠? 우리안에서 하품하거나 잠자고 있는 호랑이들을 보면서 ‘그 호랑이, 실제로 보니 참 박력있더라…!’ 라고 하기 힘들죠? 아프리카 초원서 자기를 향해 잡아먹기 위해 달려오는 호랑이를 볼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박력이라는 말을 사실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어려운 부분도 있군요.
고흐는..
고흐는 바보입니다. 그런데, 바보라면 아예 바보였으면 해요. 애매한 바보는 저로써는 쉽게 이야기하기가 어렵군요. 아마도 지금 고흐가 다시 태어나 세계의 여러 학자들이 자신에 대한 연구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고흐에 작품을 줄서서 보면서 ‘와!’ 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무척 화나겠죠?
‘이제와서 무슨!’ 살아생전, 그림 한 장 팔렸데지요. 그가 살아있을 적에 주위에서 그 그림을 보면서..’이 그림 너무 좋다!’. 그 한 마디를 간절히 원했을지도요…아마도. 그런데 말이죠. 당시, 아무도 고흐의 작품에 대하여 인정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믿어왔던 부분을 홀로 지켰던 의지는 (저로써는 이해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 고독감은 이해가 안되요.
보통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스스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본인의 책임도 있다고 보는 데 후대에 자신의 작품 한 장을 관람하기위해 미술관으로, 박물관으로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고흐의 정도는 너무 심하죠? 심해요.
그의 친형이 생활을 돌봐주면서 그림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평생 한 장 팔렸다는 사실로만 보면, 그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차가운 시선들 속에서의 소신 껏 믿어왔던 부분들에 있어서 주위로 부터 소외되어온 고독감은 잘 모르겠어요. 그의 가족조차도 그를 이해해주기 힘들었을 듯.
그건 모른채, 단지, 작품만은 멋져! 라고만 한다면 고흐에게는 잔인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너! 고흐처럼 살 수 있어?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워지겠죠? 반대로 고흐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어? 라고 바꿔서 물어보면, 대답은 들을 수 없겠지만 분명 고흐는 바보입니다.
예술에 대해선
(누군가에 의해 먼저 이야기 되었지만) 유치함이 없으면 안되는 것 같아요. 윗 사람들로부터 시킨 데로 실력을 쌓고..혹은, 어른들로 부터 배운 데로 재주를 살린 것만 가지고는 다른 이들로 부터 흥미(관심을 가져주기는)를 주기가 아주 어렵지요. 그러면서 그것이 진짜 실력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만 하면되.혹은, 남들도 그렇게 하면 되니깐, 나도 그렇게 하면되. 같은 겪어봄직한 대화들. 남들이 해왔던 대로 앞으로의 일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고 한다면 결과물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다 주지 않더라고요. 알게 된다 하더라도 알고나서 오히려 식상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고요.
그런 의미로 본다면, 동물원에 사는 박력잃은, 뻔한 호랑이들 같이 보여질 때가 있어요.오히려, 고흐처럼 사는 것이 매력적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더군요. 발상에서 나오는 유치함은 모른 채 실력만 가지고 무언가를 꾸민다면, 주위에서 흥미를 끌기가 힘들어요.
결국에는 스스로도 딱딱하게만 보여질 뿐이고요. 신문을 보면요 혹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느껴지는 것이지만, 예전부터 그러해왔던 방식으로 (자본과 신기술 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려는 것을 보면, 왠지모르게 삭막해지고 어쩐지 갈증이 생기더군요.
그럼 그것보다 더 명료한 대답을 원하시겠지만요, 어떠한 신념들이 쌓이고 쌓여, 머리끝 발상에서 피어나오는 유치함이 보여질 때, 비로써 다른 이들로부터 흥미를 유발시키고, 저절로 이목을 끄는 상당한 매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잠시 그런 생각들이 들더군요.